우루과이 (Uruguay) 우루과이 영웅이라고 불리우는 헤르바시오 아르티가스가 독립 운동을정부전개 하면서
우루과이는 독립의 불씨를 키우게 된다. 그러나 그 후로 우루과이는 외세에 침범으로 다른 나라에 합병되는 비참함을 느끼기도 하였지만 우루과이는 마침내 하나의 국가로 독립하게 된다. 독립 초기에는 자유파와 보수파가 대립하였으며 이 대립은 쿠테타, 암살 및 내란으로 이어 졌으며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정권이 되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경제는 교통이 발달하고 목축업이 활성화
되면서 경제가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1880년 집권한 호세 바트예 이 오르도녜스는 두번의 집권 기간 동안 내란의 종결, 보수파와 자유파의 평화적 공존에 힘 썻으며
사회 개혁과 현대적 공공 행정을 도입하여 경재 발전에 큰 도움을 주게 된다.
호세 바트예 이 오르도의 사망과 세계 공황은 우루과이에 사회 혼란이라는 큰 숙제를 주게 된다. 당시 집권하고 있던 가브리엘 테라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방대한 공공 사업을 계획 하지만 행정 위원회의 반발과 국민들의 시위로 이어졌다. 거기에 그는 무력으로 진압하며 무력 정치를 피기 시작 하였으나 1938년 구테타로 인해 물러나게 된다.
1951년 대통령제가 폐지 되면서 연방제식 제도로 바뀌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풀리지 않은 사회 혼란은 운송업계 노동자들의 파업과 폭동으로 연결되며 1950년 부터 시행된 임금과 가격 정책은 운용이 잘 못되어 더욱더 혼란을 야기 하게 된다. 이러한 경제적 좌절이 계속 되면서 공산주의 세력이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총생산률의 감소로 이어졌다. 쿠바와의 외교 관계 수립으로 안정적으로 변해가던 사회는 자연 재해와 잘 못된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이 증가하게 되었으나 딱히 대책이 없던 정부는 국민들의 비판의 대상이 된다.
결국 농민 집단과 좌익 집단이 게릴라 집단 까지 결성하게 되며 수도 저역 내외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이에 정부는 경찰력을 투입하여 대처하려고 하였으나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게릴라 집단을 송두리째 괴멸시키지 못하게 되었으며 정부는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결국 군에 힘을 빌려 게릴라 조직을 와해시키게 된다.
정치에 관여하게 된 군은 기존의 정치에 불만을 표시, 결국 쿠테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군이 정권을 잡은 후 국가 평의회, 최고 평의회, 자문 위원회를 구성하여 그럴듯한 국정을 하는 듯 하였으나 좌익을 배타하고 정당 정치와 민주 제도를 부정하는 폭군 정치를 하였다. 그러나 군 역시 인플레이션의 증가는 막을 수 없어 수입 증대와 기업의 파산으로 경제는 더욱 더 어려워 졌다. 결국 재민주화파와 강격파로 나눠지게 되며 결국 정당법이 통과 되면서 정치의 정상화가 이루어 지게 된다. 이 모든 결과는 경제가 안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야기된 문제라 할 수 있겠다.
우루과이의 정치는 어렵게 독립하게 된 배경 만큼이나 복잡하고 혼란 스러웠다. 보수파와 자유파가 대립하기도 하고 세계 공황으로 인한 경제적 사회 혼란, 그리고 그 사회 혼란으로 인한 국민들의 분노와 정부에 대한 불신, 그리고 결국은 군이 정권을 장악하게 까지 되는 배경. 만약 우루과이가 파라과이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있었다면 당파끼리의 싸움도 중지할 수 있었을 것이고 나라를 하나로 통합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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