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의 역사
잉카 제국의 일부 였던 에콰도르 역시 식민지 시대를 거치게 된다. 그리고 스페인 왕실의 횡포에 1810년 키토에서 민중의 소요가 발생한다. 이 소요는 교도소 폭동으로도 이어져
결국 1811년 12월에 의회에서 에콰도르의 완전 독립을 선언한다. 그러나 페루의 공격으로 다시 8년 이상을 스페인 억압속에서 살아야 했다. 그 후 그란콜롬비아에 합병되고 타 나라에 노리게가 되지만 1830년 임시 정부를 수립하며 헌법을 제정 국명을 명명등을 하게 된다. 그러나 독립과정에서 외국인들에게도 시민권이 부여되면서 대내외적인 갈등과 대립의 연속이었다.
정부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질서 확립과 전쟁 부채의 해결이였다. 이러한 문제로 반란이 일어날까 우려한 후안 호세 플로레스 대통령은 기본 협약으로 장기 집권을 하려 하였다. 그래서 결국 1845년 3월 6일에 과야킬에서 대규모 대중 폭동이 일어나 3두 체제로 변환되고 후안 호세의 망명후 15년 동안 자유주의적 통치를 하였다. 그 후 통치자가 된 가브리엘 가르시아 모레노는 15년간 강력한 권력을 사용하면서 독재자 적인 성향을 보였다. 강력한 권력과 카톨릭 사상에 물들어 있던 가브리엘도 1875년 8월, 주민들의 대통령 궁 습격으로 암살되었다. 그 후 1876년 이그나시오 데 베인테미야장군이 1883년까지 독재 정치를 하였다. 그 후 1895년 까지 3명의 합헌적 대통령이 지배하였는데 이들 모두 진보적 성향의 보수파 지식인 이었다.
1895년 과야킬에서 자유주의 혁명이 발발하여 플라비오 엘로이 알파로가 집권 자유주의 시대의 시작과 반교회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런 그도 16년 동안 에콰도르를 통치하였다. 그러나 불안정한 시국은 결국
군사 반란으로 발전하며 결국 플라비오는 망명하고 또다시 에콰도르는 무정부화 되었다.
1912년 집권한 레오니다스 플라사 구티에레스는 철도 노선의 개발과 막대한 자금을 차입하여 공공 사업을 전개 하였다. 결국 권력은 자금을 융통해준 과야킬 은행과 그 세력들이 권력을 잡게 되어 1916년에는 괴야킬 세력의 지지를 받은 알프레도 바케리소 모레노가 집권한다. 그리고 대통령은 합헌적으로 교체되었다. 그러나 1925년에 발생한 소요사태로 인해 쿠테타가 발생하지만 1926년에 취임한 이시드로 아요라는 군사 평의회를 해체한다. 그는 세계 공황의 여파로 경제가 악화된 상황에서도 외채를 빌려 공공사업을 전개 하지만 군사 반란과 폭동으로 1931년 군이 다시 집권하지만 자유파와 보수파의 대립으로 인해 내란의 위기까지 몰리고 5번이나 대통령이 바뀌게 된다. 그리고 1933년 호세 마리아 벨라스코 이바라가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하면서 그는 5번이나 집권하게 되지만 이도 1972년에 일어난 군사 쿠테타로 물러나게 된다. 그가 집권한 후 민-군 포퓰리스트 운동이 전개 되지만 군부와 정당의 마찰로 개혁에는 실패를 한다. 그 후 다시 군이 집권하게 되는데 1972년 부터 77년까지 지속된다. 그러다가 1978년 1월에 새헌법이 개정되면서 1979년 하이메 롤도스 아킬레라가 합헌적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그는 사회 정의, 경제 발전 및 언론의 자유, 농지 개혁을 실시 하였으나 보수주의자와 노조의 반대로 혼란은 계속되고 있었다.
1981년 5월 하이메 롤도스 아킬레라는 게릴라 집단에 의해 비행기 폭파 사고로 사망하게 되고 부통령이 계승하여 개발 계획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다. 그러나 부통령 이었던 오스발도 우르타도 라레라 역시 우익과 자본가들의 저항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1984년 1월에 당선된 레온 페브레스 코르데로 리바데네이라는 정책실패로 경제 위기를 야기 했다. 경제 혼란과 원주민과의 갈등, 게릴라 집단의 계속적인 활동으로 에콰도르는 계속 혼란기를 맞았으며 1992년 7월 선거에는 식스토 두란 바옌이 집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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